최근 글로벌 제조 및 인프라 기업들의 가장 큰 화두는 유럽의 NIS2 가이드라인을 비롯한 글로벌 보안 규제 준수(Compliance)입니다. 이를 충족하기 위해 수많은 기업이 IT 환경에서 검증된 멀티팩터 인증(MFA)을 OT 환경에 급하게 이식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푸시 알림을 받거나 OTP 번호를 입력해야만 제어 시스템에 로그인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안 팀이 체크리스트를 채우며 안도하는 사이, 정작 현장에서는 보안 체계를 통째로 무력화하는 위험한 편법이 암암리에 확산되고 있습니다. OT 환경의 물리적 특성과 기술적 한계를 간과한 대가는 생각보다 치명적입니다.
폐쇄망과 스마트폰 반입 금지가 만드는 기술적 모순
기존 IT식 MFA의 가장 큰 맹점은 '실시간 양방향 통신'을 전제로 한다는 점입니다. 푸시 알림이나 문자 메시지, 혹은 기존 연동형 OTP는 인증을 처리하는 순간 스마트폰이 외부 인터넷이나 셀룰러 신호, 혹은 사내 Wi-Fi망과 실시간으로 세션을 주고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국가 중요 시설이나 핵심 제어망은 외부 세계와 물리적으로 단절된 철저한 폐쇄망(Air-Gap) 환경입니다. 전파 조차 잡히지 않는 전력망 제어소나 지하 시설에서 외부 통신을 요구하는 인증 방식은 도입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첨단 공정이나 고보안 구역은 정보 유출 방지를 위해 스마트폰을 포함한 모든 외부 전자기기의 반입을 법적으로 엄격히 금지합니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인증 자체를 할 수 없는 IT식 솔루션은 현장 입구에서부터 기술적·물리적 모순에 부딪히게 됩니다.
두꺼운 보호 장갑과 교대 근무가 부딪히는 물리적 마찰
설령 기기 반입이나 통신이 허용되는 구역이라 할지라도, 1분 1초의 가동 중단이 막대한 손실로 이어지는 공장의 가용성 앞에서는 또 다른 장벽이 기다립니다.
방진복과 두꺼운 보호 장갑을 착용한 엔지니어가 설비의 긴급 알람을 처리하기 위해 HMI 스크린 앞으로 뛰어갔을 때, 스마트폰을 꺼내 잠금을 해제하고 2차 인증을 수행하라는 메시지는 단순한 번거로움을 넘어 생산 지연 리스크 그 자체가 됩니다. 더욱이 하나의 마스터 워크스테이션을 여러 명의 엔지니어가 공유하며 교대 근무를 하는 공장의 특성상, 특정 개인의 계정이나 기기에 종속되는 IT형 MFA는 현장의 협업 구조를 완전히 깨뜨리는 걸림돌로 작용합니다.
보안을 강화하려다 스스로 빗장을 풀게 만드는 ‘MFA 피로증’
가동 연속성을 지켜야 하는 현장 실무자들은 결국 규제가 만든 불편함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우회 경로를 찾기 시작합니다.
인증 자산의 공용화: 교대 근무조가 함께 쓰기 위해 인증용 스마트폰이나 하드웨어 토큰을 공장 워크스테이션 한구석에 상시 꽂아두거나 방치합니다.
불법 프로그램 설치: 인증 단계에서 발생하는 지연을 차단하고자, 엔지니어들이 임의로 MFA를 건너뛰는 불법 크랙이나 우회 툴을 제어 PC에 설치합니다.
안전을 위해 도입한 기술이 역설적으로 현장의 'MFA 피로증(Fatigue)'을 유발하고, 실무자들에게 보안 우회의 정당성을 부여하여 더 큰 보안 공백을 만들어내는 실태입니다. 해커가 노리는 진정한 아킬레스건은 바로 이 지점, 즉 '규제가 불편해서 현장 직원이 스스로 열어둔 허점'입니다.
인간의 실수를 탓하지 않는 동적 인증의 필요성
작업자의 동선을 방해하고 가용성을 갉아먹는 방식의 보안은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현장 실무자의 부주의를 탓하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OT 환경의 보안 성패는 실무자의 UX(사용자 경험)를 전혀 해치지 않으면서도, 외부 네트워크에 의존하지 않는 대안 아키텍처를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최근 글로벌 선도 기업들이 주목하는 해법은 외부 서버와의 통신이 전혀 필요 없는 '단방향 다이내믹 인증'으로의 전환입니다. 비행기 모드처럼 통신이 완전히 차단된 상태에서도 절대 중복되지 않는 동적 코드를 실시간으로 생성해 내는 방식입니다.
특히 스마트폰 반입이 금지된 구역을 위해 기술의 형태를 스마트폰 앱에만 가둬두지 않고, 현장 엔지니어가 사용하는 업무용 PC 내부 소프트웨어에 내장하거나 늘 소지하는 사원증 형태의 스마트 카드(E-Paper) 폼팩터로 유연하게 구현해야 합니다. 로그인하는 찰나의 순간에만 유효한 코드를 백그라운드에서 상호 검증하게 함으로써, 작업자는 별도의 추가 조작 없이 평소처럼 로그인하면 됩니다. 공정의 흐름과 물리적 격리를 방해하지 않는 OT 네이티브 인증 전략만이 규제 준수와 공장 생존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유일한 해법입니다.